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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전력 60분 34회 '환절기'

(16. 09. 03)

 

 

오이카와 토오루X카게야마 토비오


 ― 影山 飛雄


  “조심히 다녀오세요.”

  “응. 다녀올게.”

  “…저기, 오이카와 씨.”

  “왜?”

  “……”

  “토비오쨩?”

  “아닙니다. 요즘 환절기니까 옷 잘 여미고 다니세요.”

 

  쾅, 삐리릭. 누군가가 볼 때는 아주 평범하고도 평범하고, 어느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겠지만 다르다. 그것도 요 며칠간 계속 된 생각이었다. 이 말은, 오이카와 씨가 달라졌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


 [권태기일까?]

  

  “대왕님이 달라진 거 같다고?”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겠지만.”

 

  흠……. 오랜만에 만난 히나타의 꽤나 오랜 친구인 카게야마는 히나타에게 다름 아닌 연애 상담을 하고 있었다. 어디서 본 건 있는지 턱을 받치고선 골똘이 머리를 굴리는 듯한 히나타는 이내 손바닥과 손바닥 사이를 마찰 시키며 마주치는가싶더니 해맑게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르겠다!”

  “야!!”

  “하지만 진짜 모르겠는 걸 어떡하라고?! 게다가 난 연애 같은 건 꿈도 못 꿔 본 사람이란 말이야!”

  “멍청이한테 물어 본 내 잘 못이지.”

  “아, 혹시 대왕님이랑 너… 권태기 아냐?”

  “뭐? 권태기?”

  “그래 권태기!”

 

 


  *

 

 


  ‘그게 뭔데?’

  ‘으음, 그러니까 나도 스가 선배한테 들은 건데. 에… 그러니까. 연인들은 사귀다보면 싫증이 나기도하고 시들해지는 경우가 있대. 그게 오는 시기를 권태기라고 한다나 봐.’

  ‘……’

  ‘근데 그 권태기가 오는 시기는 연인들마다 다르다고 하더라고, 얼마 안 사겼는데도 오는 사람들도 있고… 대왕님이랑 너는 꽤 오래됐으니까, 뭔가 이상하게 느껴지는 거면 권태기 아닐까…?’

 

  권태기…. 권태기……? 카게야마는 그런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하기도 하는구나 싶었다. 내가 사람이지만 사람의 감정은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들다. 카게야마는 폭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손에 쥐어진 빵집 이름이 박힌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대왕님이 좋아하는 걸 짠! 하고 사 간다던가?’

 

  라는 히나타의 말을 듣고선 생각나는 것은 당연하게도 우유빵 밖에 없어서 히나타와 헤어지자마자 빵 집으로 달려간 카게야마는 제빵사에게 간절히 부탁해 갓 만들어져 나온 뜨끈한 우유빵을 얻어냈다. 만들어 놓은 것보다 당연히 더 비싸게 받아서 최근에 받았던 알바비를 크게 깎아내렸지만 오이카와에게 줄 생각을 하니 그게 또 좋다고 기분 좋게 빵 집을 나섰던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언제 집에 올 지도 모르건만 곧장 집으로 향했다. 아, 우유도 하나 살 걸 그랬나.

 

  톡―

  볼 위로 한 방울 떨어진 물방울에 하늘을 바라 본 카게야마는 어느샌가 하늘을 덮고 있는 먹구름을 발견하곤 우유빵부터 자신의 품에 품었다. 빨리 가야겠다. 점점 발걸음을 빨리 움직이던 카게야마는 빗줄기가 서서히 두꺼워지는가싶더니 집 근처에 거의 다다랐을 즘엔 첨벙첨벙 바짓단까지도 적셔버리는 빗줄기에 품 속에 넣어 둔 우유빵을 더 꼭 껴안았다.

 

  “아 오이카와 씨가 뭐라하겠다….”

 

  잔뜩 우겨진 빵을 보면서, 나의 소중한 우유빵한테 너무했어 토비오쨩! 이러실까. 머리카락마저도 푹 젖어가는 와중에도 오이카와를 떠올리며 바보 같이 웃던 카게야마는 언제 도착하나싶던 찰나 집 앞 담벽을 발견하곤 속도를 줄였다. 온 몸은 이미 흠뻑 젖어 가슴 속에 품어 있던 우유빵만이 뜨끈했던 카게야마는 집 대문 앞 우산을 쓰고선 가방을 둘러매고 있는 익숙한 인영에 물기로인해 흐릿해진 시야를 닦아내곤 시선을 바로 했다.

 

  “오이카와 씨…?”


  


  ―及川 徹  


  “여어, 오이카와 왔냐?”

  “우와~ 이와쨩! 맛키! 맛층! 오랜만이야!”

  “여전히 재수없게 잘생겼네~”

  “오이카와 씨의 미모는 방부제라구요~ 것보다도 재수없다니! 너무해!”

  “역시 네 녀석이 오니까 엄청 소란스럽다니까.”

 

  그거 칭찬으로 받아들일게 이와쨩. 시끌 벅적하지만 듣기 좋은 소음, 익숙한 목소리, 그리고 익숙한 모습들. 모든 것인 편하고 어딘가 안정되는 기분이다. 한 때는 팀 메이트였지만 지금은 고등학교 동창, 고등학교 후배가 되어버린 이 수많은 사람들은 언제 봐도 날 편하게 해 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 킨다이치!”

  “오랜만이야~ 것보다도 후배 주제에 늦다니 건방진 걸 킨다이치!”

  “오이카와 녀석 또 심술부리긴.” 

  “이 녀석 요즘 애 키우느라 바쁘니까 봐주자고.”

  “맞다. 킨다이치 결혼했었지?”

  “결혼식까지와서 모든 여자 하객들 소리지르게 한 장본인이 누구더라.”

  “어쩔 수 없잖아~ 오이카와 씨가 이렇게 빛이 나는 걸 어쩌라구요?”

  “응 킨다이치, 이제 애 몇 살이더라?”

  “아 이제 20개월 됐습니다!”

  “이렇게 무시하는 거야?!”

 

  시끄러 망할카와, 고등학교 때 모습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며 여기 저기서 웃음소리가 한가득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나마키도, 마츠카와도, 아쉽게 못 온 쿠니미도 야하바도,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겠지? 이런 사람들 중 삶의 가장 큰 변화를 가지게 된 사람은 당연지사 킨다이치였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난 후 생긴 여자친구와 꽤나 긴 연애를 하는가싶더니 어느 날 덜컥, 여기 있는 모두에게 청첩장을 선물했던 킨다이치였다. 그리고 대략 1년 반이 지나자 킨다이치는 애아빠가 되어버렸고, 요즘은 아이를 돌보느라 바쁜 모양이었다.

 

  “우와, 이 아이 정말 킨다이치의 아들이란 말이야?”

  “나도 보여줘, 오 다행이네 엠자 앞머리는 닮지 않아서.”

  “그건 저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킨다이치가 키가 커서 그런가, 다리가 긴 거 같은데?”

  “미래 배구 선수네.”

  “그런가요?”

 

    어느샌가 킨다이치의 주변엔 킨다이치 아들의 사진을 보려 몰려들어 있었다. 떠들썩한 이야기들만 들어도 어떻게 생겼는지, 키가 얼만한지 딱 예상이가서 사진을 보지 않고도 머릿속에서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 했다. 사진은 보고싶었지만, 어째선지 보면 안 될 것만 같아서 다들 떠드는 와중에도 조용히 음식만을 주워 먹고 있었다.

 

  “요즘 카게야마하고는 어떠냐.”

  “……”

 

  유일하게 나와 토비오의 관계를 알고 있는 사람, 이와이즈미는 언제 온 건지 조용히 내 옆으로와선 나직하게 물었다. 하지만 그렇게 물어봤자 딱히 대답할 건 없어서.

 

  “항상 똑같지 뭐.”

  “그래?”

 

  언제나 다를 거 없이 똑같은 대답만 할 뿐이다. 하지만 대답과는 달리 요즘 토비오와 나의 관계는 시시해졌다고 말해도 될 정도로 많이 식어있는 상태였다. 좀 안타까운 말이지만 아무래도 내 감정이 더이상 토비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거 카게야마가 선물해 준 거냐.”

  “어? 아 이거.”

 

  이와이즈미가 가르킨 것은 내 가방에 달려있는 마치 우유빵처럼 새하얗고 동글 동글한 모양에 귀여운 표정이 그려진 키링이었다. 토비오와 연애를 시작하고나서 대략 3년쯤 지났을 때 토비오가 기념일을 챙긴다고 선물해 준 첫 선물이었다. 처음 우유빵을 닮은 이 키링을 보고 내가 우유빵만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좀 더 좋은 선물을 주지 왜 이런 걸 주냐고 따졌었는데, 그런 내게 죄송하다며 마땅히 생각나는 선물이 없었다던 토비오의 귀여운 대답을 듣고서 순식간에 투정이 가라앉아었던 날. 이 새하얀 것이 금방 닳고 때 탈까봐 보관만하다 오늘 처음으로 가방에 달고 나왔는데, 그걸 금새 발견해버린 이와이즈미를 보니 새삼 관찰력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그러고보니 너희 이제 6년 다 돼가던가.”

  “어…. 그렇네.”

 

  토비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년 후, 우연히 연락이 온 토비오에게 나는 고백을 받았다.

 

  ‘좋아합니다, 오이카와 선배.’

 

  그때만해도 너무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서 버벅거렸었는데, 그랬던 것이 벌써 6년이나 흘려버렸다니 시간 한 번 참 빠르기도 해라. 6년이라는게 원래 이렇게 금방 지나가버리는 거였던가?

 

  “6년이라…….”

  “야 오이카와, 이와이즈미 이것 봐봐.”

 

  「히쨩~ 엄마 해 봐요, 엄마!」

  「엄… 엄, 마! 마, 마쨩!」

  「우와! 잘 했어요 히쨩~ 그럼 이번엔 아빠 해 볼까?」

  「퍄퍄…? 파파!」

  「우리 히쨩 정말 대단해!」

 

  갑작스레 하나마키가 보여 준 영상은 다름아닌 킨다이치의 아들이었다. 이제 막 말을 배우고 있는지 오물오물 작은 입을 움직이며 엄마, 아빠를 부르는 아이의 모습은 어떻게 보아도 정말로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뽀얗고 새하얀 피부, 안으면 품 안에 쏙 들어올 법한 아담한 체구. 작은 손, 발.

 

  “진짜 귀엽지 않아? 이래서 결혼하려고하나?”

  남자와 여자라는 한 쌍에게서만 생겨날 수 있는 소중한 존재.

  “귀엽네. 이제 막 말 배우는 거야?”

  “네! 이제 저희가 하는 말을 따라서 꽤나 잘 하더라구요.”

  “아 이것도 봐봐. 이 사진 정말 호빵 같아.”

 

  진정한 행복이란게 저런 걸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해서 예쁜 아이를 낳는 것. 아주 평범하고도 평범하지만, 너무나도 행복한 일. 그리고 토비오와 나의 관계에선 절대로 실현될 리 없는 일.

 

  “어이. 오이카와 왜 그래?”

  “답지않게 조용하고 말이야. 이것 봐, 이 부분 킨다이치를 정말 닮은 거 같지 않아?”

 

  새하얗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아가의 빛나는 눈동자가 마치 나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마음 속 깊은 곳을 무거운 추가 꾹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며 쿡쿡 날카로운 바늘이 찔러오는 듯 했다.

 

  “응, 귀엽다 정말.”


[이별]


  “난 우산 있으니까 걸어서 갈게.”

  “어 그래. 조심히 가!”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오자 하늘은 추적 추적 빗방울을 내리고 있었다. 혹시 몰라 항상 가방에 넣어 두었던 우산을 펼쳐들며 나와는 반대 방향인 모두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떼었다. 찰박 찰박, 신발 바닥과 마찰되어 소리가 나는 빗물 소리에 길을 걷다 우뚝 발걸음을 멈춰섰다.

 

  대략 몇 시간전에 보았던 킨다이치의 아이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도대체 왜 이럴까 싶다가도 그건 얼마 안 가 깨닫고 말았다.   

  

  “아….”

 

  나 설마 토비오와 헤어지고싶은 건가? 영 풀리지않던 응어리가 어디선가 탁, 퍼지고나자 절로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돼. 여태 찾지 못 했던 해답이 이런 거라니, 토비오를 향했던 그 마음이 순식간에 바뀌어버린 듯 해 나 스스로도 놀라고 말았다. 그걸 깨닫고나자 멈추었던 발걸음이 다시금 빠르게 바뀌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아닌 뜀박질로 바뀌었다.

 

  그랬다. 나는, 난…….

 

  “오이카와 씨…?”

  “하아, 하… 하.”

 

  숨가쁘게 뛰어가 도착한 집 앞엔 비에 흠뻑 젖어버린 토비오가 서 있었다. 품 안에 뭘 감추고 있는지 무언갈 꽉 껴안고 있는 토비오의 모습에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오이카와 씨! 우산 갖고 계셨네요. 다행입니다.”

  “……”

 

  평소엔 잘 웃지 않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잘 웃는 거야 토비오.

 

  “얼른 들어가요. 오이카와 씨.”

  “토비오.”

  “네?”

 

  말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 말라고, 머릿속에서 외치고 있었다. 그건 진심이 아닐 거라고, 후회하고 말 거라고, 하지만 마음은 아니었다.

 

  전할 말이 끝나자마자 토비오의 품 속에 있던 무언가가 발 밑으로 툭 떨어졌다. 차마 마주할 수 없던 토비오의 얼굴을 잠깐이나마 마주하니 토비오의 얼굴은 빗물에 흠뻑 젖어 우는 것인지, 젖은 것인지 구분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기도 잠시, 토비오는 떨어졌던 하얀색에 봉투를 다시 집어들더니 그것을 나에게 건네주고선 아무런 말없이 뒤돌아 떠났다.

  


  *

 


 

  띵동, 띵동―! 띵동, 띵동! 쾅쾅쾅! 아닌 밤 중에 자신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어떤 누군가에 히나타는 인상을 찌푸리며 현관문을 열어재꼈다.

 

  “누구세… 으악! 카게야마?!”

 

  문을 열자 자신의 품에 쓰러지듯 안긴 사람은 다름아닌 카게야마였다. 히나타는 당황하기도 잠시 어쩐지 축축하게 젖은 듯한 카게야마의 몸에 깜짝 놀라며 경악을 하고 말았다.

 

  “카게야마! 정신차려! 왜 이러는 거야? 카게야마!”

  “히나타…. 히나타.”

 

  답지않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웅얼거리는 카게야마의 그제서야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은 히나타는 우선 차가운 몸부터 따듯하게 데워야할 거 같다는 생각에 먼저 집 안으로 카게야마를 끌고 들어왔다. 하나뿐인 침대 위로 카게야마를 던지듯 눕히고 제대로 카게야마의 얼굴을 바라 본 히나타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열 때문에 온 몸이 뜨거운 카게야마의 모습에 숨을 헉 들이키며 거실로 나가 구급 상자를 애타게 찾았다.

 

  “야 카게야마 정신차려.”

 

  차가운 물에 수건을 적시며 카게야마의 열을 낮추려 애를 쓰던 히나타는 카게야마에게 입힐만한 옷이 있을까하며 다시 방 문을 나서려는 중 자신의 손목을 붙잡는 억센 힘에 다시 뒤를 돌며 카게야마를 바라보았다.

 

  “카게야마…?”

  “오이… 카와 씨…. 오이카와, 오이카와 씨……”

 

  팔을 눈 언저리에 얹혀놓고 오이카와의 이름만을 부르는 카게야마는 흐느끼는 듯 보였다. 떨리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애처로워서 히나타는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손목을 잡은 카게야마의 손을 떨어트렸다.

 

  “그냥 울어.”

 

  쾅. 히나타는 방 안에서 빠져나갔고 히나타의 방 안은 밤새 흐느끼는 소리로 가득했다.



  *

 


  ― 影山 飛雄

 

  ‘토비오.’

  ‘네?’

  ‘우리 헤어지자.’

 

  갑작스런 오이카와 씨의 이별 통보에 무작정 뛰어오기만 했다. 결국 종착점은 히나타의 집이였지만 밤새 울고불고한 모습을 히나타 녀석에게 들켰다 생각하니 뒤늦게 쪽팔리기 그지없었다. 갈아입혀진 옷도 히나타 녀석이 끙끙거리면서 갈아입혀 준 거겠지.

 

  “어 일어났냐? 몸은 좀 어때?”

  “아, 어… 괜찮아.”

 

  방 안을 나서 시계를 바라보자 시간은 오후 5시를 한참 넘어 6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나 이렇게 많이 잔 건가, 히나타는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 듯 부엌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내 모습을 발견한 히나타는 얼른 앉으라며 식탁 의자를 끌어 당겼다.

 

  “자 카레! 내 특별히 돈 좀 썼다.”

  “…고맙다.”

 

  익숙한 카레향이 코 끝을 찌르고 히나타가 맞은편에 앉고나서야 숟가락을 들어 한 숟갈 떴다. 카레를 입 안 가득히 퍼 먹자 카레 특유의 자극적인 맛에 없던 입 맛도 그나마 돌아오는 거 같아서 스스로 안심하고 말았다.

 

  “카게야마.”

  “어.”

  “대왕님하고 헤어졌어?”

 

  숟가락을 놓치고 말았다. 다시금 어제 저녁 비오던 날을 떠올리니 마음 속 깊은 곳이 쿡쿡 바늘로 찔러지는 느낌이었다. 이때만큼은 히나타가 원망스러워서 한숨을 푹 내쉬자 히나타 또한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찬 물을 벌컥 벌컥 들이키곤 식탁 위로 잔을 쾅 내려놓았다.

 

  “대왕님이 그러쟤?”

  “……”

  “아아! 답답해 정말! 내가 그렇게 충고를 해 줬는데… 바보야마!”

  “그러게.”

 

  나 정말 바보 맞는 거 같다. 금방이라도 울컥 눈물방울들이 차오를 거 같아서 애꿎은 아랫입술만을 꾹 깨물었다. 오이카와 씨도 나처럼 그렇게 느끼고 있던 거였을까. 우리 정말 권태기 맞던 걸까. 오이카와 씨, 진심인가….

 

  “답지않게 그만 좀 울어라.”

  “……”

  “미안, 내가 너무 아픈 곳을 찔러버렸어. 여기 휴지…”

  “…오이카와 씨 지금 뭐하고 계실까.”

  “……”

 

  카레가 담겨진 그릇 위로 눈물이 툭툭 떨어졌다. 고요한 정적에 민망하게 눈물 소리만이 들릴까 애써 울음소리를 죽였다. 하지만 가슴 한 구석은 너무나도 답답해서, 숨이 턱턱 막혀와서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결국 이렇게 헤어져야만 하는 걸까.

 

  “카게야마.”

  “……”

  “그렇게 보고싶으면 보러가면 될 거 아니야.”

 


  *

 


  ― 及川 徹

 

  카게야마가 던지듯 주고 간 하얀색에 봉투 속엔 아직도 따끈따끈한 하얀 우유빵이었다. 그 축축하고 차가운 빗 속에서 별 것도 아닌 이 빵을 지키겠다고 그 비를 맞으며 품 속에 꼭 안고있던 것이 이 우유빵이라니,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고, 마음이 시리다 못 해 너무 차가워져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 “뭐? 카게야마랑 헤어졌다고?”

  “어.”

  - “…너 돌았어?”

 

  어, 그런가 봐. 이와쨩. 나 머리 어딘가가 잘 못 됐나 봐. 나 왜그랬지? 그렇게 무작정 이별 통보를 한 지 꼬박 하루가 지나고 내가 제일 먼저 찾은 사람은 이와이즈미였다. 이 소식을 전하자마자 예상했던대로 이와이즈미는 구박부터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었는데, 수화기너머로 이와이즈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바로 옆에서 잔소리를 듣는 것만 같아서 몸을 더 움츠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 “너 진짜 후회 안 하는 거냐.”

  “……”

  - “어이, 망할카와 듣고 있어?”

 

  솔직히 후회한다. 그것도 엄청 많이, 뒤늦게야 후회한다더니 그 말이 어떤 상황에서 쓰이는 건지 이제서야 알게되어버려서 더욱 마음이 아려왔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느냐는 이와이즈미의 물음에 나는 쉽게 말을 꺼내지 못 했다.

 

  “이와쨩. 아직 6시 좀 넘었는데 만나지 않을래?”

  - “나 바쁘거든.”

  “그럼 역 앞에서 7시까지 만나! 소중한 소꿉친구 오이카와 씨가 기다린다구~ 늦지 마!”

  - “야! 망할카…”

 

  뚝, 이러면서 나올 거면서 이와쨩 튕기기는, 핸드폰을 침대 위로 대충 던져놓고는 이불 속에서 벗어나 방 안을 둘러보았다. 덜컥.

 

  ‘오이카와 씨 어디나가세요?’

 

  내가 전화하는 소리를 밖에서 들은 토비오가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곤 나에게 물어볼 것만 같았다. 이래서 습관이라는게, 기억이라는게 무섭다는 거다. 하아…. 이 이불 위에도 여전히 토비오의 체향이 남아있고, 이 방 안도 여전히 토비오의 흔적이 여러군데 남아있었다. 토비오, 토비오. 다시는 만나지 못 할 나의 토비오. 나는 지금 후회하고 있어, 바보 같이. 그리고 너를 그리워 해. 체 하루도 안 됐는데.

 

  “보고싶어.”

  


*

 


 

  쾅! 히나타의 말을 듣자마자 겉 옷이고 뭐고 거의 맨 몸으로 밖으로 뛰쳐나온 카게야마는 무작정 자신의 집으로 뛰어갔다. 오이카와와 자신이 함께 살던, 오이카와와 자신의 집. 히나타의 집에서 몇 블럭 안 되어 뛰어가면 금방 도착할 거리였기에 숨이 차오를때까지 뛰어간 카게야마는 얼마 안 가 보이는 익숙한 담벼락에 헉헉대며 차오르는 숨을 내뱉었다.

 

  집 앞에 도착했다. 하얀색으로 페인트칠 된 새하얀 대문, 크진 않지만 아담하게 단 둘이서 오순도순 잘 살 수 있는 익숙한 풍경에 자신의 집. 그 집을 바라보자 카게야마는 울컥 가슴이 벅차올라서 미간을 좁히며 다시금 눈물을 툭툭 떨구었다. 너무나도 숨이 차올라서, 미친듯이 답답해서 아려오는 가슴을 퍽퍽 주먹으로 친 카게야마는 결국 담벼락에 기대며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오이카와가 너무나도 보고싶었다.

 

  다시는 만날 수 없겠지, 이렇게 찾아와봤자, 다시는, 그 모습을, 웃는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는 거겠지. 카게야마는 다시금 빨갛게 달아오르는 눈가를 꾹꾹 눌러 비볐다.

 

  “…토비오?”

 

  딱딱한 아스팔트 바닥 위로 빗물이 톡톡,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제 미처 다 떨어지지 못 했던 비들이 다시금 시작하려는 듯 보였다. 그리고 몇 분 안 지나 시원스런 빗줄기가 금방 오이카와와 카게야마를 적셨다.

 

  “오이카와 씨…”

 

  카게야마는 이게 꿈인가 싶었다. 점점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물줄기를 닦으며 고개를 좌우로 저은 카게야마는 몇 분이 지나도 사라지지않고 오히려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온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숨을 훅 들이켰다.

 

  “토비오 바보야?! 지금 이 차림으로 있으며 이후에 아주 심하게 아플 거야! 미쳤어?”

  “오이카와 씨! 오이카와 씨…!”

 

  카게야마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빗줄기에 세수하듯이 얼굴을 쓸어 닦으며 계속해서 오이카와를 똑바로 바라보려 애썼다. 카게야마는 말해야했다, 오이카와에게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똑바로 전해야만 했다.

 

  “우선 집 안으로 들어가자.”

  “오이카와 씨 죄송해요.”

  “……”

  “전 정말 오이카와 씨의 비해 너무나도 부족한 사람입니다.”

  “……”

  “하지만, 하지만! 전 그런 오이카와 씨가 너무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아요….”

  “토비오.”

  “제발… 제발, 절 떠나지말아 주세…….”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말이 끝마치기 전 카게야마를 으스러질만큼 꽉 껴안으며 흘러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며 떨려오는 목소리로 카게야마에게 소리쳤다.

 

  “토비오! 넌 정말 바보야. 진짜 바보야. 그건, 그건 누구보다 네가 더 잘 알 거야 어?”  

  “오이카와 씨…”

  “넌 사람보는 눈이 정말 없어. 바보야 바보 멍청이 토비오!”

 

  근데 그런 내가 너를 좋아해. 아니, 좋아하다 못 해 사랑하고 있어 토비오. 솔직하지 못 해서 미안해, 바보 같이 굴어서, 잠시나마 그깟 평범함을 겪어버린 나머지 너에게 상처를 주어버려서 정말 미안해.

 

  “더이상 널 떠나지 않을게 토비오.”


  [행복하자 우리, 아프지말고.]


  “토비오쨩. 몸은 좀 어때?”

  “많이 호전된 거 같습니다.”

 

  나름 큰 ‘사건’이라 생각됐던 일이 지나고 대략 일주일이 지난 참이었다. 카게야마는 이틀 연속으로 차가운 비를 맨 몸으로 맞아버려서 당연하게도 심한 독감에 걸려버렸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제대로 음식을 챙겨 먹지 않은 탓에 영양 실조라는 카게야마에게선 절대 있을 수 없던 진단을 받고 말았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그런 진단을 받은 것이 다 자신의 잘 못이 크다싶어 요 며칠간 카게야마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며 카게야마를 정성껏 간호했다. 카게야마는 이런 오이카와의 친절이 처음엔 너무 어색해서 솔직히 대답했다가 또 한 번 오이카와에게 한 소리를 듣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그런 순간 순간이 너무 행복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이카와 씨.”

  “응 왜?”

  “환절기라는 거 참 무서운 거 같아요.”

  “맞아~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져선 갑자기 비가 내리고, 갑자기 따뜻해지기도하고 말이야. 딱 감기 걸리기 좋단 말이지 이거.”

  “그래도 그 환절기 덕에 오이카와 씨한테 이런 간호도 받고, 좋은 거 같네요.”

  “토비오쨩 정말 바보네, 그렇게 돌려 말하지말고 오이카와 씨가 좋다고 솔직하게! 직설적으로 말하라구?”

  “네 오이카와 씨, 좋아해요. 정말 많이 좋아해요.”

 

  카게야마가 작은 거 같지만, 작지 않게 속삭이듯 오이카와에게 고백했다. 오이카와는 하란다고 그걸 또 하는 카게야마의 당황하다가도 이내 사근사근 마음 속을 간지럽히는 달콤함에 카게야마의 긴 머리칼을 살며시 넘겨주었다.

 

  “나도.”

 

  연인들은 사귀다보면 싫증이 나기도하고 시들해지는 경우가 있대. 그게 오는 시기를 권태기라고 한다나 봐.

 

  맞아 히나타, 연인들은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지. 근데 오이카와 씨와 나에겐 권태기라기보단… 여름 밤 갑작스레 찾아 온 태풍처럼 갑작스레 찾아와서 따뜻했던 공기를 차갑게 바꿔버리고 도망치는 환절기였던 거 같다. 그리고 갑자기 너무나도 시리도록 비가 추적 추적 내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주 맑음이야.

 

  “토비오쨩 다 나으면 어디 놀러갈까?”

  “어디를요?”

  “글쎄~”

 

  너와 함껜데 어디든 안 좋겠어?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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