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니카게] 달빛 아래 푸른
- 너무 늦었지만 쿠니미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 쿠니카게 단문입니다
[쿠니카게] 달빛 아래 푸른
바람결에 휩쓸린 푸른 색에 네모필라들이 서로의 꽃잎을 부딪치며 자신들을 스치는 두 사람에게 길을 터주었다. 쟤네 봐, 사내 둘이서 손을 꼭 붙잡고 어디론가 도망치고 있어. 어디선가 누군가에 속삭임이 들려오는 듯 해, 카게야마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뒤를 돌았다. 도련님, 여기 어디쯤에서 여린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런 그의 손을 붙잡고 있던 쿠니미는 그의 목소리에 따라 고개를 돌리더니 이내 아무도 없는 허공을 마주했다.
“환청을 들은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들렸는 걸요…”
“지체할 시간이 없다. 얼른.”
카게야마는 단호한 쿠니미의 말에 괜히 기운이 빠져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다시금 그의 손을 꼭 붙잡고 그의 그림자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바보들, 우리들의 목소리인 것도 모르고. 이번엔 깔깔깔 거리는 웃음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을 향한 조롱 소리가 들려 왔다. 카게야마는 힘을 줘 세게 쿠니미의 손을 잡아 당겼다. 도련님, 도련님은 진정 이 조롱 섞인 목소리들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까? 카게야마는 답답하다는 투로 그에게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쿠니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 그를 바라보았다. 카게야마, 조곤히 불리는 이름에 움찔하며 몸을 움츠린 카게야마는 혹여 혼이 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자신의 옷깃을 꼭 붙잡았다. 예… 도련님, 지레 겁을 먹은 모습에 피식 웃으며 굳은 얼굴을 푼 쿠니미는 이내 카게야마의 보드라운 두 뺨을 살며시 감싸며 아래로 향해 있던 그의 시선을 바로 잡아 자신을 올려다 보게 만들었다.
“네가 들은 것은 천지에 널린 푸른 꽃들의 목소리다.”
“꽃들이 말을 하기도 합니까…?”
“가끔 아름다운 이들이 지나가면 그러기도 하지.”
“그럼… 이 푸른 꽃들은 도련님을 시샘한 것입니까?”
쿠니미는 자신보다 한 뼘 정도 작은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깜박거리는 긴 속눈썹 사이로 말똥거리는 푸른 눈동자가 그 어떤 이들보다도 순수하고 깨끗했다. 그 속에 흠뻑 젖은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다가도 그는 아이의 질문에 나지막이 대답했다. 글쎄, 꽃들의 속내는 꽃들만 아는 법이지.
그의 말이 끝나자 카게야마는 빤히 그를 올려다 보았다. 안 그래도 새하얗고 예쁜 자신의 도련님이 새까만 하늘 위로 둥그렇게 솟은 달의 빛을 받으니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듯 했다. 도련님께…입맞춤을 해도 되겠습니까? 자신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한 마디에 순식간에 얼굴이 홍화 마냥 붉게 달아오른 카게야마는 뒤늦게 손사레 치며 고개를 저었다. 쿠니미는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다 허둥대고 있는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닙, 아닙니다. 도련님, 제가 말실수를…. 훌쩍 눈앞으로 바짝 다가온 쿠니미에 끝내 말을 잇지 못 한 카게야마는 숨을 훅 들이마시곤 동그랗게 뜨고 있던 눈을 꾹 덮었다.
카게야마의 입술을 머금은 쿠니미는 어색하게 엮여 있던 손을 풀곤 천천히 그의 두 뺨과 귀를 살포시 손으로 감쌌다. 부드럽게 감겨오는 손길에 카게야마의 심장 박동이 조금씩, 조금씩 빨라졌다. 큰 두 손의 온기와 온 몸을 지배한 두근거림에 더 이상 꽃들의 시샘 같은 건 들리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붙어 있던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지고, 카게야마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한 도련님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차오르는 숨을 작게 내뱉었다. 이제 더 이상 꽃들의 시샘 따위 안 들리느냐, 짙고 낮은 목소리에 카게야마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대답을 본 쿠니미는 이내 작게 웃어보이며 그에게서 떨어졌다.
“꽃들은 아마도 사랑스러운 네 모습을 시샘하던 것일지도 모르겠구나.”
“예…?”
“이러다 한 밤 중 도망친 것이 무색할 정도로 금방 잡힐 거 같으니 서둘러 가자꾸나.”
쿠니미는 카게야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신의 눈앞에 내밀어진 고운 손을 바라보던 카게야마는 다시금 그의 손을 붙잡고 발걸음을 움직였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까만 밤 유일한 빛이 되어 준 달 또한 함께 움직이며 그들이 가는 곳마다 환한 달빛을 흘려주었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반짝거리며 푸른 색을 내뿜는 네모필라들이 살랑살랑 움직였다. 그들도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